[wise.n 도서] 지금의 내가 나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자본론』
내가 지금 단 한 권의 책을 고른다면,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1권을 고르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론』 전체가 아니라, 제1권이다. 해설서도 아니고, 입문서도 아니고, 요약본도 아니다.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해부하기 위해 가장 집요하게 파고든 그 원전, 바로 그 책이다.
내가 이 책을 다시 고르는 이유는 단순히 젊은 시절 마르크스를 읽었기 때문이 아니다.또 내가 여전히 진보적이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자본론』이 다시 필요한 이유는,이제 세상을 구호나 선의만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성.
복지.
청년.
서민.
투자.
성장.
개혁.
겉으로는 모두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말들 앞에서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
그 수익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
그 아름다운 명분 뒤에는 어떤 구조가 숨어 있는가 ?
정책의 이름은 공공인데, 실제 귀착은 사적 이익은 아닌가?
선의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장치가 되는 것은 아닌가?
요즘 내가 세상을 바라볼 때 자주 던지는 질문들이다.그리고 이 질문의 방식은 이상하리만큼 『자본론』의 방식과 닮아 있다.
『자본론』 제1권은 상품과 화폐의 분석에서 출발해, 자본이 어떻게 잉여가치를 만들고 축적되는지를 파고드는 책이다.
눈앞에 보이는 시장의 교환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그 뒤에 놓인 생산, 노동, 시간, 소유, 축적의 구조를 묻는 책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에게 『자본론』은 단순한 이념서가 아니다.세상의 말들을 의심하는 훈련서에 가깝다.
정치 슬로건을 볼 때도 이제는 문구의 호소력만 보지 않는다.그 말이 어떤 계층을 호출하는지, 어떤 감정을 조직하는지, 어떤 이해관계를 숨기는지를 보려 한다.
국민연금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공공주택에 투자하면 좋지 않나?"에서 멈추지 않고,"그 연금의 수익은 결국 누구의 주거비에서 나오는가?"를 묻게 된다.
철도 문제를 볼 때도 단순히 "노선을 늘리자"가 아니라,병목 구간, 선로 용량, 환승 수요, 광역교통망 계획의 구조를 따지게 된다.
헨리 조지를 다시 볼 때도 "토지세를 더 걷자"에 머무르지 않는다.지대, 토지 사유, 불로소득, 빈곤의 구조를 함께 보려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기본적으로 현상보다 구조를 보고,명분보다 귀착을 보며,
말보다 작동방식을 보려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 마지막 한 권은 감동적인 위로서보다,오래 씹고 오래 의심할 수 있는 구조 분석서가 더 어울린다.
그리고 『자본론』은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다르게 읽히는 책이다.
20대에는 분노로 읽힌다.
30대에는 사회구조로 읽힌다.
40대에는 제도와 이해관계로 읽힌다.
50대 이후에는 삶의 시간, 노동의 소모, 몸의 한계, 가족을 부양하는 현실감까지 겹쳐서 읽힌다.
젊었을 때의 『자본론』이 자본주의 비판의 책이었다면, 지금의 『자본론』은 어쩌면 삶의 소모와 시간의 가격을 묻는 책으로 읽힐지도 모른다.
사람의 시간은 어떻게 가격이 되는가 ?
삶의 에너지는 어떻게 교환가치로 환산되는가 ?
누군가의 안정은 왜 다른 누군가의 불안 위에 세워지는가 ?
정책, 금융, 부동산, 노동, 연금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가 ?
이 질문들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다른 후보들도 있었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도 좋다.
토지, 지대, 불로소득, 조세 문제를 보는 데 강력한 책이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도 어울린다.
노동, 작업, 행위, 공적 삶의 문제를 깊게 건드린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생활태도, 금욕, 합리화, 근대적 인간형을 설명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한 권만 남긴다면, 이 책들은 각각 한 부분을 설명한다.반면 『자본론』 제1권은 내가 관심 갖는 거의 모든 문제를 하나의 큰 틀 안에 넣어준다.
정치.
경제.
부동산.
노동.
연금.
복지.
계급.
국가.
이데올로기.
삶의 시간.
그리고 인간이 자기 삶을 어떻게 소모하며 살아가는가 ㅍ
그래서 지금의 내가 나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결국 『자본론』 제1권이다.
다만 이제는 예전처럼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를 확인하기 위해 읽고 싶지는 않다.그보다는 "마르크스는 무엇을 보려고 했는가"를 다시 읽고 싶다.
상품에서 사회를 보고,
가격에서 권력을 보고,
임금에서 삶의 시간을 보고,
이윤에서 관계의 비대칭을 보고,
축적에서 미래 세대의 조건을 보는 방식.
그 방식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하다.
나는 더 이상 세상을 감상적인 위로만으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좋은 말의 표면보다, 그 말이 작동하는 구조를 보고 싶다.선의의 언어보다, 그 선의가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결과로 귀착되는지를 묻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나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이것이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이 책은 이제 나에게 과거의 이념서가 아니다.앞으로의 10년 동안 다시 세상을 읽기 위한 가장 오래된 도구이자, 가장 불편한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