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n 도서] 장하준, 사다리걷어차기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
먼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간 사람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
원래 이 개념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데 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에도 그대로 대입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이미 집을 가진 사람과 아직 집을 갖지 못한 사람 사이 간극을오히려 더 벌려놓고 있다
새로 부동산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
특히 평범한 월급쟁이들.
이들에게 이제 ‘내 집 마련’은 현실적 목표라기보다
인생의 가장 먼 숙제,
혹은 이번 생에는 포기해야 할 무엇이 되어버렸다.
물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부모의 지원이 있거나, 이미 자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현금 여력이 충분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예전에는 그래도 희망이라는 게 있었다.
열심히 모으면, 어느 정도 목돈을 만들면,
언젠가는 내 생활권 안에서 집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겠다는 기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희망의 끈마저 점점 끊어지고 있다.
물론 살 수 있는 집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찾아보면 있다.
문제는 그 집들이 내가 사는 곳, 일하는 곳, 아이를 키우고 싶은 곳, 내 삶의 기반이 있는 곳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서울만 보더라도
5억, 6억짜리 아파트는 눈에 띄게 줄었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의 집값은 이미 15억을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집들 중 상당수가 불과 15년 전, 10년 전만 해도
3억, 4억대였다는 점이다.
그때는 손에 1억, 2억 정도만 들고 있어도
대출을 끼고, 월 부담을 감내하면서
어떻게든 들어가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대부분 사람들의 월급은 15년 전,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집값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다.
과거에는 1억, 2억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최소 4억 정도는 손에 쥐어야
그나마 집을 살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보통 사람들이 10년을 모아 1억, 2억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20년 이상을 모아야 겨우 현재 집값의 문턱에 닿을까 말까다.
그러니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다.
“이번 생에는 집은 포기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집값이 떨어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론 말은 쉽다.
집값 하락이 가장 간단한 해답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집값은 그렇게 단순하게 인위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여러 정부가 각자의 방식으로 시도했고,그 결과가 지금의 시장 아닌가.
더구나 집값 하락은 단순히 집값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가계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그 하락은 곧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심할 경우 금융시스템의 불안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그렇다고 보유세를 높이는 것이 만능인가.
집을 가진 사람은 결국 그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려 할 것이다.
세금이 올라가면, 그만큼 더 비싸게 팔거나
더 높은 임대료로 전가하려 하지 않겠는가.
지금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도 결국
세금, 규제, 금융비용, 공급 부족이 뒤엉키며
최종 가격에 반영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래서 묻고 싶다.
지금의 정책은 정말 타당한 정책인가?
이미 사다리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그대로 둔 채, 뒤늦게 올라오려는 사람들의 사다리만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동산 정책은 단순히 가격을 누르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세금을 올리고, 대출을 막고, 규제를 더한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오히려 자금력이 있는 사람은 버티고,
현금이 부족한 사람은 시장 밖으로 밀려난다.
결국 정책의 명분은 서민 보호였을지 몰라도,
그 결과는 서민의 진입 차단이 되어버린다.
나는 이 지점이 가장 씁쓸하다.
책상머리에서 보기에는
규제하면 잡힐 것 같고,
세금 올리면 해결될 것 같고,
대출 막으면 투기가 사라질 것 같겠지만,
현실의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 단순한 정책들이
오히려 시장을 더 왜곡시키고,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을 더 멀리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에서
지금 진짜 걷어차이고 있는 것은
투기꾼의 사다리가 아니라,
처음으로 집을 사보려는 사람들의 사다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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