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공간에 대한 강의인지 대담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참석자 대부분이 설계사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전에는 이웃 간에 정이 많았는데,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요?”
질문은 단순했지만, 사실 가볍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나는 이런 취지로 답했던 것 같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수평적 공간구조가 수직적 공간구조로 바뀌었기 때문 아닐까요.”
과거 우리가 살던 동네를 한번 떠올려보자.

동네 어귀에는 늘 구멍가게가 있었다.
만화방도 있었고, 문방구도 있었고, 슈퍼 앞 평상도 있었다.
집에 가려면 그 길을 지나야 했다.
그 길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났다.
친구를 만나고, 이웃 어른을 만나고, 가게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났다.
딱히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됐다.
“어디 가냐?”
“학교 갔다 오냐?”
“엄마 집에 계시냐?”
“밥 먹었냐?”
이런 말들이 오가던 공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말들이었는데, 그 별것 아닌 말들이 동네를 만들고 있었다.
사람을 기억하게 했고, 서로의 안부를 자연스럽게 알게 했다.
학교에 가는 길도 그랬고, 직장에 가는 길도 그랬다.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스마트 기기가 손에 들려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10분, 15분 걸어가는 시간이 은근히 무료했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했고, 옆에 걷게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집 안에만 있지 않았다.
집 사이, 골목 어귀, 공터, 대문 앞에서 놀았다.
누구 집 아이인지 동네 사람들이 대충 알았다.
그래서 혼나기도 했고, 얻어먹기도 했고, 보호받기도 했다.
대문도 참 묘한 공간이었다.
대문은 단순히 집 안과 밖을 가르는 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마당이 있었고, 마당은 완전히 사적인 공간도 아니고 완전히 공적인 공간도 아닌, 묘한 중간지대였다.
이웃이 대문 앞에서 이름을 부르면 안에서 대답이 나왔다.
대문이 열려 있으면 ‘아, 집에 계시는구나’ 알 수 있었고, 대문 앞에 놓인 신발이나 자전거만 봐도 그 집의 하루가 어느 정도 읽혔다.
그러니까 예전의 집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아니었다.
골목, 대문, 마당, 방으로 이어지는 여러 겹의 공간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천천히 가까워질 수 있는 완충지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을 한번 보자.
차를 타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고 곧장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선다.
그 동선에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는가.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혼자다.
혹시 누군가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더라도 서로 말을 걸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휴대폰을 본다.
같은 층에 살아도 이름을 모르고, 같은 라인에 살아도 얼굴을 모른다.
과거에는 집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지나쳐야 했다.
지금은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집에 도착할 수 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결국 이웃 간의 정이 사라진 이유를 단순히 “요즘 사람들이 차가워져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이 변한 것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서로 마주치도록 만들었던 공간이 사라졌다.
수평적 공간은 사람을 만나게 했다.
골목은 우연한 만남을 만들었고, 대문은 안부를 묻게 했고, 공터는 아이들을 섞이게 했다.
반면 수직적 공간은 사람을 분리한다.
주차장, 엘리베이터, 복도,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효율적이지만, 관계를 만들지는 못한다.
우리는 더 빨리 집에 도착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웃을 잃어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다시 수평적 공간구조로 돌아간다고 해서 예전 같은 동네가 그대로 복원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미 세상은 너무 달라졌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뉴스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기 전에 이미 휴대폰 화면 속 수많은 사건과 의견과 논쟁이 우리 머릿속을 채운다.
또 우리는 혼자 있는 공간에 너무 익숙해졌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영상을 보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대화하는 시대다.
이웃과 관계를 맺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과거의 이웃 간 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사람들의 인성 문제나 공동체 의식의 약화로만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공간이 바뀌었다.
동선이 바뀌었다.
생활방식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관계의 밀도도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이웃의 정이 아니라,
이웃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는지도 모른다.
골목이 사라지자, 안부도 사라졌다.
대문이 사라지자, 기다림도 사라졌다.
엘리베이터가 생기자, 우리는 더 편해졌지만 조금 더 외로워졌다.
참 편리한 시대가 되었는데,
참 이상하게도 사람은 더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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