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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으로 바라보는 세상

[wise.n 경제] 2025년 환율이 가리키는 것! not 외환위기 but 경제구조

“1470원 환율”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시장 정보가 아니다. 외환위기를 겪어본 세대에게는 일종의 경고음처럼 들린다. 그래서 요즘 곳곳에서 “제3의 외환위기”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상황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현재 한국이 맞닥뜨린 문제는 외환위기 재연 가능성보다, 환율이 가리키는 경제 구조의 취약성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달러 인덱스는 이미 정점을 지난 상태다. 한때 110선을 넘나들던 때와 달리 지금은 100 아래에서 움직인다. 세계적으로 보면 ‘슈퍼 강달러’ 국면이 한 발 물러선 셈이다. 그럼에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중후반까지 올라와 있다. 달러 하나만 놓고 보면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다른 통화를 함께 봐야 그림이 또렷해진다.

올해 원화는 달러뿐 아니라 유로, 위안, 엔에 대해서도 동시에 약세를 보냈다. 유로/원 환율은 연중 상단에, 위안/원은 위안화가 소폭 우위에 선 흐름을 보여준다. 엔화 역시 달러 대비 약세임에도, 원화와의 비교에서는 엔이 예전보다 덜 약해진 그림이 나타난다. 간단히 말해, 네 방향에서 모두 원화가 뒤로 밀린 형국이다. 이는 “달러가 강해서 어쩔 수 없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시장이 통화 자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원화라는 통화의 위치를 다시 짚어봐야 한다는 신호에 가깝다.

금리만 놓고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대 중반으로, 숫자만 보면 미국이나 유럽, 중국과의 단순 비교에서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문제는 투자자가 보는 기준이 단순 금리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얼마나 받느냐”와 동시에 “그 대가로 얼마만큼의 변동성을 감수해야 하느냐”를 함께 본다.

원화는 이 두 가지를 조합했을 때 위치가 애매하다. 환율 변동성은 적지 않은 편이지만, 그 변동성을 감수하고 들어올 만큼의 금리 프리미엄은 뚜렷하지 않다. 위험은 신흥국급으로 느껴지는데, 보상은 선진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통화라는 인상을 준다. 이런 평판은 한 번 형성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환율이 잠시 진정되더라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비슷한 레벨에서 약세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자산 비중을 조금씩 줄이고, 미국·유럽 자산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실제로는 한국 자산을 판 뒤 원화를 달러로 바꾸고, 그 달러로 다른 나라 자산을 사는 거래가 꾸준히 반복되는 셈이다. 여기에 미·한 간 투자, 인수·합병, 설비투자 확대에 따라 국내 기업과 연기금의 달러 수요까지 겹친다. 어느 한 시점의 ‘공격적인 매도’라기보다, “한국 비중 줄이기 + 달러 수요 확대”가 매일 조금씩 환율 상단을 밀어 올리는 구조에 가깝다.

대외 환경도 원화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중국과 글로벌 제조업 사이클에 깊이 엮여 있다. 중국의 성장 둔화와 부동산 불안, 미·중 갈등은 한국 수출과 설비투자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 그런데 충격이 들어왔을 때 위안화는 자본 통제와 정책 개입 덕분에 움직임이 제한되는 반면, 원화는 개방경제라는 특성 때문에 더 크게 흔들린다. 리스크는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 방어 수단은 상대적으로 적은 구조다.

엔저도 비슷한 맥락에서 부담 요인이다. 일본은 느슨한 통화정책과 약한 엔화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원화가 강해지면 한·일 기업 간 가격 경쟁력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정책·시장 모두 원화 절상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이 분위기는 결국 원화 강세보다는 약세 쪽을 묵인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지리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위치가, 환율 측면에서는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체질이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이제 새롭지도 않을 정도로 오래된 이슈다. 기준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이자 부담과 자산시장 충격이 동시에 튀어나온다. 내수시장은 인구 구조와 소득 분배, 고용 구조를 고려할 때,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상태다. 산업은 특정 업종에 편중돼 있고, 자영업 비중은 여전히 높다. 생산성과 안정적인 소득을 동시에 높이는 데 불리한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은 어느 한 해의 악재가 아니라, 꾸준히 축적되는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시장은 이를 “잠깐 나빠진 뉴스”가 아니라 “이 나라 경제의 체질”로 받아들이고 통화 가치에 반영한다. 지금 환율은 그 결과물이자, 경제 구조에 대한 일종의 평가표에 가깝다.

그렇다면 “제3의 외환위기”라는 말은 어떻게 봐야 할까. 나는 현재로서는 외환위기가 다시 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외환보유액 규모, 단기 외채 구조, 은행의 대외 차입 구조는 1997년이나 2008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어 있다. 과거처럼 단기간에 외화 유동성이 마르는 상황이 그대로 재연될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지금의 불안은 해외 투자 비중이 커진 탓에 더 크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해외 자산을 많이 들고 있을수록, 원화 약세 국면에서 평가 손실이든 환차익이든 숫자가 크게 출렁인다. 이 숫자가 심리를 자극하면서 “위기”라는 단어를 쉽게 꺼내게 만든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이 정도면 환차익이 충분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작동한다. 그 지점에서 달러를 되파는 움직임이 나타나면, 시장은 스스로 일정 부분 안정화될 수 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외환위기가 오느냐, 안 오느냐”를 두고 공포를 키우는 일이 아니다. 현재의 환율 수준이 한국 경제 구조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원화가 네 개의 주요 통화에 동시에 밀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 통화의 ‘체력’이 약해졌다는 의미이고, 그 체력은 금리 하나로 회복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상황을 새로운 외환위기의 전조로 보지 않는다. 다만, 환율이 한국 경제의 취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비추고 있는 시기라고 본다. 가계부채, 부동산, 내수 기반, 산업 구조, 자영업 과잉 같은 오래된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신호에 가깝다. 숫자에 놀라 “위기”만 외칠 때가 아니라, 그 숫자가 가리키는 경제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집중해야 할 때다. 지금 환율이 말해주는 것은 외환시장 공포가 아니라, 구조 개편을 더 이상 뒤로 미루기 어렵다는 메시지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