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민평당의 한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다당제를 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 손을 잡아서 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이 발언은 스스로를 “DJ 정신의 계승자”, “호남 정치의 복원”을 말해온 사람들의 주장과 묘한 충돌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P 연합 역시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서로 다른 세력이 손을 맞잡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도 한다. DJP 연합은 바로 그런 현실정치의 산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를 넘어 김대중 정치의 핵심이었던 연합과 통합의 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까지 읽힐 수 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그들에게 김대중은 역사와 현실을 움직였던 정치가라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드는 정치적 상징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호남을 결집시키고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름은 될 수 있지만, 정작 그의 정치적 선택과 철학까지 계승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현실은 어떠한가 ?
최근 몇 년 사이 드러난 여러 사회적 갈등만 보더라도, 김대중 정치가 왜 다시 소환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트코인 논쟁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투자 열풍이나 투기 문제로 바라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깊은 사회적 불안이 존재한다. 비트코인이 상징하는 것은 2030세대가 느끼는 계층 상승의 좌절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해도 부모 세대처럼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은 약해졌고, 사회적 사다리는 끊어졌다는 체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에게 비트코인은 투기라기보다 마지막 남은 희망의 통로처럼 인식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저임금 논쟁 역시 마찬가지다. 취지는 선했지만 현실은 복잡했다. 누군가는 보호받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났다고 느낀다. 일자리는 줄고 근로시간은 축소됐으며, 체감 소득은 기대만큼 늘지 못했다는 불만도 존재한다.
결국 어느 한쪽의 언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진보의 언어만으로도,
보수의 논리만으로도,
모든 사회 구성원을 만족시키는 해법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누가 이 갈등을 책임 있게 조정하고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난 대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어느 정당이 승리하고 패배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균열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선거였다.
과거처럼 영·호남 대립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갈등 축이 등장하고 있다.
세대가 갈라지고,
계층이 대립하고,
지역은 또 다른 방식으로 분열되고 있다.
TK, PK, 호남, 수도권, 청년과 기성세대, 자산 보유층과 무자산층 사이의 긴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언제까지 이 좁은 땅에서 지역 갈등에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의심하고,
연대하기보다 편을 가르는 데 더 익숙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래전 남긴 경고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라지고, 계층이 대립하고, 세대가 갈등해서는 우리 민족의 미래는 없다.”
그가 우려했던 분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아진다.

과연 지금 누가 DJ 정치를 하고 있는가.
김대중의 이름을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람이 계승자인가?
아니면 김대중이 평생 씨름했던 통합의 과제를 실제 정치에서 감당하려는 사람이 계승자인가?
중도개혁통합신당은 세대 갈등을 해소하고 계층 분열을 극복하겠다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심인지는 결국 행동으로 증명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통합을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희생의 문제로 보았다.
“통합이란 상대에게 내 것을 다 준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70%를 주고 30%를 갖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통합은 불가능하다.”
이 말의 핵심은 분명하다.
통합은 좋은 말 몇 마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양보해야 하고,
누군가가 손해를 감수해야 하며,
누군가가 정치적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통합은 어렵고,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백의종군’이라는 표현도 결국 같은 문제다.
중요한 것은 단어가 아니다.
누가 자신의 몫을 내려놓고 있는가.
누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판을 넓히고 있는가.
누가 통합의 비용을 실제로 지불하고 있는가.
정치는 결국 말보다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진정한 DJ 정신의 계승자는 누구인가.
김대중을 이야기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김대중의 정치를 실천하는 사람인가.
DJ 정신은 이름을 외치는 데 있지 않다.
갈등을 관리하고,
분열을 봉합하며,
서로 다른 세력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데 있다.
김대중을 기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김대중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2018년에도 유효했으며, 2026년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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